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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체연료 석탄,액체연료 석유등은 열을 발생시키는 화석연료로서 기본적으로 모든 지구인의 생활에서 사용됩니다.

 

하지만 기후 온난화와 각종 부작용으로 인해 친환경 풍력, 지열, 수력, 원자력등으로 대체를 해보지만 아직은 화석연료의 아성을 넘을수 없으며 산업화 시대 이후 모든 산업 기반시설에 기본적인 에너지원으로 뿌리가 깊어 사용이 더 빈번하므로 화석연료 없는 지구 사회는 아직 생각 할수 조차 없습니다.

 

그럼 오늘은 화석연료중 액체 연료인 석유에 대해 알아볼까요?

 

 

석유의 역사

 

 

▶석유의 발견

석유(石油)의 정식 영어 명칭은 암석기름 'Petroleum' 이라고 하는데요. 그것의 어원은 1556년 독일의 광물학자 아그리콜라(게오르크 바우어)가 저술한 논문에서 최초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단어는 두단어를 합친 합성어로 암석을 의미 하는 라틴어 'Petra'와 기름을 뜻하는 'Oleum'을 합쳐 부르는 말이 되었습니다.

 

 

 

 

아그리콜라 Georgius Agricola

 

 

 

 

석유는 어느 곳에서나 있었으며 석유에 대한 인류 최초 발견에 대한 단서는 미약합니다. 아마 최초라고 구지 꼽자면 현재의 산유국인 이란, 이라크 등과 같은곳에서 찾아야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지역의 과거 유적들에 석유형태인 아스팔트를 이용해 배의 틈을 막거나 도로건설에 사용되었음을 알수 있는 증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외에 많은 산유국들이 있으며 언제 최초로 발견됬는지는 무의미한 추적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최초의 유정 발견은 말할수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석유를 시추 하기 시작한 때를 알면 되는데요. 그것은 1859년의 미국 펜실베니아 타이터스빌 드레이크(DraKes) 유정입니다.


 

▶석유의 생성 원인

석유의 생성원인에 대해서는 두가지 이론이 있는데요. 하나는 지하의 탄화물에 물과 황 등이 섞여 고온, 고압으로 반응하는 과정에서 탄화수소가 발생했다는 무기성인설(innorganic theory)과 과거 바다의 미생물, 동물, 식물등의 각종 유기물이 지하에 매몰된 후 높은 지열과 지압 토양의 촉매 작용을 거쳐 탄화수소로 변했다는 이론인 유기성인설(organic theory)이 있습니다.

 

하지만 석유가 발견된 곳에서는 오래된 과거의 얕은 바다나 호수 밑의 퇴적암이 많이 발견되기 때문에 현재는 압도적으로 석유의 유력한 생성 원인 이론중 유기성인설이 더 호응을 얻고있습니다.


 

▶최대의 석유 생산국

엄청난 양의 초거대 유전은 26개정도가 페르시아 만 지역의 아랍-이란 퇴적분지에 분포되있으며 나머지 초거대 유전은 미국에 2개, 러시아 2개, 멕시코 2개, 리비아 2개, 알제리 1개, 베네수엘라 1개, 중국에 1개 등이 있습니다. 이 나라들은 유전을 개발하면 엄청난 부를 축적할수 있는데요. 자금 난으로 인한 유전 개발이 어렵거나 전쟁등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개발이 미루어 지거나 느려지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현재는 중동, 러시아, 미국이 지구상 최대의 석유 생산국이며 소비는 미국 다음으로 러시아가 가장 많습니다.


 

▶미국인 드레이크의 석유 시추

1850년도 쯤 유럽은 독일, 폴란드, 루마니아, 북아메리카의 미국, 캐나다 등이 석유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는데요. 석유 산업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미국인 애드윈 L. 드레이크인데요. 그의 원래 직업은 평범한 철도 승무원으로 펜실베니아에 위치한 석유회사 대표인 조지비셀을 만나고 나서 부터 그의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드레이크는 조지비셀과 타이터스빌 석유 개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것에 호감이 높아진 조지비셀은 드레이크를 석유 업계로 이끌었습니다. 1857년 겨울 드레이크는 타이터스빌을 첫방문 후 다음해 봄 부터 그지역에 대한 석유를 개발하기로 계획했는데요.

 

첫해동안 인력으로 석유 발견을 위한 땅을 파 보았지만 아무 성과가 없이 1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1859년 봄에 기계 제작자이자 소금광산 채굴자인 월리엄 스미스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요. 그는 소금광산 채굴에 사용하는 "케이블 툴 시추탑 (Cable tool drilling rig)"을 드레이크에게 추천하였으며 결국 그 기술을 이용해 땅을 파들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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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툴 시추탑 (cable tool drilling rig)

 

 

 

 

여기서 케이블 툴 시추탑은 위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왼편의 증기엔진에 연결된 회전운동 하는 'band wheel' 장치를 거쳐 하단부 바퀴위의 가로방향 구조물이 회전운동을 수직운동으로 바꿔주는 'walking beam'을 drilling cable이 연결된 "시추 비트(drill bit)"를 시추탑(drilling rig 혹은 derrick)위로 상승시켰다 강하시킬때의 충격으로 암석을 파쇄하며 시추하는 방법으로 현대의 시추 기술은 대부분 여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무튼 드레이크의 시추팀은 시추 시작 16ft(4.8m)의 깊이에서 시추공이 붕괴되고 지하수가 유입되는 문제가 생겼는데요. 고민하던 드레이크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었는데 3m길이의 주철제 배관을 연결해 먼저 수직으로 뭍고 그 구멍사이로 시추 비트를 넣어 시추공 붕괴로 인한 지하수 유입을 막을수 있었고 시추를 다시 시작 할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장비로는 하루에 약1m정도밖에 땅을 파내지 못했기에 시추구는 일명 '드레이크의 멍청한 짓'이란 별명으로 불리웠는데 당시의 드레이크가 속한 세네카 오일회사(Seneca Oil Company)는 파산 지경이였고 시추를 시작하기 위한 비용이 없었기에 드레이크는 친구로 부터 돈을 빌려 겨우 시추를 진행하였습니다.

*세네카 오일 회사 : 1858년 조지 비셀과 조나단 에블레스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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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달을 진행하던 8월27일 시추봉이 69.5ft(21m)지점까지 시추 한후 작업을 마쳤는데, 다음날 아침 작업자인 윌리엄 스미스가 시추구 바닥에서 원유가 올라오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결국 그들은 해냈고 초기 원유 생산은 하루 25배럴(bbl)에 불과 했었지만 이를 시작으로 펜실베니아 지역에 오일붐이 불어 1872년에는 159000배럴이 생산되었습니다.

 

이 유전의 발견으로 세네카 오일 회사의 창업자인  조지 비셀과(George Bissel)과 조나단 에블레스(Jonathan Evereth)는 막대한 부를 축척하게 되지만, 드레이크는 시추방법에 대한 특허 신청도 하지 않아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으며 그나마 벌었던 돈마져 석유산업에 투자하며 1863년쯤 파산하여 가난해집니다.

 

하지만 1872년 펜실바니아 의회가 석유산업을 시작한 드레이크의 공로를 인정하여 년1500불의 종신연금을 지급하게 되는데요. 드레이크는 그렇게 살다가 1880년 사망하였습니다. 그의 업적은 위대해졌으며 현재 미국과 세계 석유산업의 아버지로 기억됩니다.

 

 

 

 

애드윈 L. 드레이크 (Edwin Laurentine Drake)

 

 

 

 

현대의 석유는 온난화와 같은 기후변화와 정치적으로는 강대강들로 인한 많은 전쟁을 잃으킵니다. 석유가 있어도 궁핍한 나라, 석유로 인해 나태해진 나라, 더 큰 미래를 위해서는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친환경 고효율의 에너지원을 찾는데 모든 자본을 투자하여야겠습니다.

 

훗날 언젠간 석유시대는 끝이나고 이제 어떤 에너지 시대가 올지는 여러분의 기본적인 에너지 사용 노력에 달려있는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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