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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시마호(UKISHIMA MARU)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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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우키시마호에 대해 아시나요? 우키시마호에 대해 다룬 한 다큐영화에서 한국인과 일본인에게 우키시마호에 대해 아는지 설문 조사를 했는데요. 양국시민들은 중국의 난징대학살에 대해 70%는 알고 있었지만 우키시마호에 대해 아는 사람은 단 5%에 불과 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우키시마호에 대해 알아야할까요? 비극적이지만 잊혀 질수있기에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우키시마호에 대해 알아봅시다.

 

 

우키시마호 (Ukishima Maru)

 

 


▶우키시마호는 아오모리 오미나토 시 해군 경비선으로 전쟁중에는 주로 군수물자 수송역할을 했던 배인데요. 1945년 8월15일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 패망한 후, 일주일 후인 8월22일 오미나토 항에서 강제 징용 조선인들 만여명을 태우고 부산으로 향한다는 계획하에 희망자를 모집했습니다. 그들은 우키시마호에 아오모리, 훗카이도 근교 시모기타반도 군수시설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을 모두 다 태우기 위해 승선료를 받지않기로 하고 적극적으로 모집했으며 특히 우키시마호 이 후에는 조선으로 향하는 배가 없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조선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고향에 돌아간다는 기쁨을 품으며 모여들었고 만여명이 넘는 인원이 배에 다 타는데에도 4일이라는 시간이 소요됬습니다. 원래 처음 배의 항로는 아오모리 오미나토 항을 출발 하여 8월 25일 부산항에 도착하는 일정이였지만 1945년 8월22일 밤 10시에 출발한 귀국선 우키시마호는 1945년 8월24일 교토부 마이즈루 만 시모시바가 앞바다에서 알수없는 이유로 침몰하였습니다.

 

 

우키시마호 출항에서 침몰까지

 

 

당시 일본 정부는 사망자가 500여명이라고 밝혔을 뿐 정확한 탑승자 명단과 사고 경위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일본은 수년 동안 선체 인양과 유해 수색을 미루는 등 부실하게 대응했고 그렇게 그 사건은 뭍혀버렸습니다.
 
세월이 흘러 2014년, 일본 외무성 기록에 충격적 진실이 있었습니다. 우키시마호에 탑승한 인원이 애초 8000여명에 이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어 지난 2016년에는 이 배에 폭발물이 실린 정황을 기록한 일본 방위청 문건이 드러났는데요.               
결국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1945년 8월24일 오후5시20분경 우키시마호가 교토부 마이즈루 만 시모시바가 앞바다에서 계획적으로 폭침당해 침몰하였다고 주장합니다.

 

 

1990.8.14 아사히신문이 제공한 침몰 장소를 구글지도로 검색

 

 

▶왜 그들은 그런 행동을 했고 계획 폭침의 증거는 무엇일까요.

1. 일본은 패망 후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그리고 강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의 어떠한 움직임과 행동에 불안감을 느끼고 염려를 했습니다. 그리고 패망한 일본은 강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에 대해 유엔 국제법 규정에 의해 배상과 추후 대책이 이루어 져야했기 때문입니다.

2. 패망한 일본은 금과 식량 이상으로 철이 필요했습니다. 우키시마호(4730톤)처럼 대형 선박에서 엄청난 양의 철을 획득할수 있습니다.

3. 오미나토항을 출발 예상된 경로를 이탈한것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에게 물이 부족해 공수하러 일본 근해 항구로 간다는 이야기를 했으나 승무원들은 마이즈루 만 시모사바기 항에 도착하기 전 구명보트를 통해 하선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계획된 수순 같으며 결국은 계획된 장소에서 우키시마호를 폭침 시켰고 아래층 객실에 있던 조선인은 대부분 수장되었고 바다로 떨어진 사람들은 옷보기등으로 버텼으나 배에서 나온 기름으로 인해 대부분 숨을 거두었습니다. 결국 조선인 1만명여 중에 8천여명이 희생되었습니다.

4. 배는 가운데가 V자로 꺽여 폭파되 침몰되었습니다. 이해 불가한 부자연스러운 침몰이며 물리적인 폭탄 같은것에 인해 침몰한 흔적입니다.

5. 우키시마 출항 8시간 전. 연합군 요구로 일본 해군최고지휘관은 24일 18시 이후 함선의 항해를 금지하라는 긴급전보를 각 부대로 보냅니다. 그러나 우키시마 관할 지역 사령관은 이를 알고도 배를 출발시킵니다.

6. 오미나토항을 출발한 이후 승무원들은 배에서 값나가는 물건들을 바닷물에 던지는등 이상행동을 보였으며 갑판위에서 젖을 먹던 어린 아기를 바라보며 '피지도 못한 꽃봉우리가 지는게 안타깝다'는 이야기도 했다고 합니다.

7. 우키시마호가 가라앉은 지 4개월이 지난 45년 12월 한국인 생존자 몇몇이 우키시마호 사건을 ‘일본군에 의한 계획적인 폭거’라고 주장하며 일본 정부를 진주군(미군) 사령관에게 고발한 문서까지 발견되었습니다. 더욱 의심스런 사실은 9년간 방치했던 문제의 배를 54년 갑자기 인양한 뒤, 세밀한 조사 없이 해체하여 하루아침에 고철로 처분해 버렸다는 점입니다.

뭔가 의심스럽지 않습니까? 하루 속히 잊혀진 역사를 국민 모두가 알고 잘못된 그들의 행동에 대해 속죄를 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밖에 참고 할 기사.

•2016년에는 이 배에 폭발물이 실린 정황을 기록한 일본 방위청 문건 (entertain.v.daum.net/v/20190815171603426) 
 
•발굴, 우키시마호 고의 폭침 정황.."日 승무원 출발 전 항의시위" 2019.08.16 (news.v.daum.net/v/20190816073658384)  
 
[장영도/우키시마호 생존자 : "배에 타자마자 이 배가 부산으로 직행하지 않고 도중에 기항을 하면 폭파한다는 유언비어가 나돌았어요."] 
 
출항 전 일본 승조원들이 조선인 때문에 생명을 바칠 수 없다며, 위험한 구역 항해는 절대 반대한다는 규탄시위를 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러자 일본 해군 참모장이 의무를 수행해 깨끗이 목숨을 바치라고 '폭탄적인 선언'을 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출항 전, 일본인들은 이미 위험 가능성을 알았다는 정황입니다. 
 
•우키시마호 생존자 "배 폭침 직전, 일본인은 떠났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 ) 2019.08.14(news.v.daum.net/v/20190814094501907)
1945년 8월 24일, "부산행 마지막 배""사망자 524명 뿐? 최소 2천 명은 죽었다" (주: 실제 8천명이상) "육지 보인다" 소리 직후 '펑' 배 두 동강 / 개미 떼 같은 사람들 뒤엉켜 아비규환 / 대형 사고인데 보도 안한 日 대체 왜?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1) 일본은 끝까지 악마를 택했다 (www.hmh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758)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2) 우키시마호는 어떻게 침몰했나 ‘조선인섬멸작전’ (www.hmh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800)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3) “소용돌이치는 물속에 조선인 여자와 아이들이 빨려 들어가며 (bit.ly/2N2dZ8C)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 같이.. 지금 역사의 주인은 우리입니다. 역사를 바로 잡아 역사를 깨우치고 기억하는 것은 우리 들의 남은 과제이자 몫입니다. 큰 눈으로 세상을 바라 보고 예리한 눈으로 역사의 오류를 잡을수있다면 작게 나마 진정 국가 발전에 헌신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까지 세렝게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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