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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왕과 왕비를 포함한 기타 왕족들은 용변을 볼 때 궁궐 내전을 떠나 누추한 외부 변소까지 가는데 왕족의 품격이 사라질세라, 휴대용 변기인 "매화(梅花)틀"을 사용했었는데요. 또한 '매(梅:매화)'는 대변을, '우(雨)'는 소변을 의미하는 "매우틀"로도 불렸습니다.

"아, 이런 변이 있나!"

왕은 신호가 오면 궁내 난방, 청소, 조명 등을 담당하는 복이처 소속 최고 상궁을 부르는데, 왕의 하명이 떨어지면 최고 상궁은 나인 계급 중에서도 가장 격이 높은 지밀나인을 시켜 매화틀 내부에 있는 매화그릇에 매추(梅芻(잘게 썬 여물)나 매회(煤灰(재)를 뿌려 매화틀을 대령합니다. 매화틀은 나무를 이용해 틀을 만들고 엉덩이가 닿는 부위는 천이 둘러져 있으며 변이 낙하하는 지점 내부에는 별도의 수거 그릇을 배치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아무튼 왕은 비단천으로 두른 임시 가림막 안에서 용무를 보게되는데, 용무가 끝나면 복이상궁은 비단 천으로 왕의 뒤를 꼼꼼하게 닦아주게 되는데요. 그사이 계급이 아래인 지밀나인이 왕의 매화향이 솔솔 날지 모르는 뜨끈한 똥 위에 매추나 매회를 또 한 번 뿌려 매화틀을 들고 내의원 어의에게 넘기게 됩니다. 그러면 어의는 왕의 똥색을 감별하거나 살짝 찍어 맛을 보고 왕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게 됩니다.

창덕궁 매화틀 -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창덕궁의 매화틀 -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지금 생각하면 좀 그렇습니다. 왕의 건강을 위해서지만, 왕의 모든 것을 보여줘야하는 왕의 삶은 어쩌면 피곤한 삶일지도 모르니까요.

근데 한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왕은 휴대용 변기를 사용해 용변을 보았는데, 과연 궁내부의 내시, 궁녀, 하급관리, 궁궐을 지키는 군인들은 대체 어디에서 배변을 보았을 까요?



"문화재청이 공개한 조선왕궁의 공중화장실"


문화재청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에서는 2021년 7월 8일 오전 10시 특별한 현장을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이 현장은 왕족을 제외한 궁내 다수 사람들이 사용하던 "공중 화장실"인데요. 조선 왕궁의 화장실 유구(유적에 포함되는 시설 하나하나를 말함)는 '경복궁배치도' '북궐도형' '궁궐지' 등의 기록상 경복궁 동궁 남쪽에 있는데, 그곳에서 조선왕궁 화장실로는 처음 실물로 발견되었습니다.

화장실 발굴 현장 -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언론에 공개된 경복궁 화장실 유구는 1~2칸짜리 부터, 4~5칸짜리 까지 총 75.5칸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요. 주로 궁궐의 상주 인원이 많은 지역에 밀집되어 있었으며, 특히, 경회루 남쪽의 궐내각사(闕內各司)와 동궁(東宮) 권역을 비롯하여 현재의 국립민속박물관 부지 등에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경복궁 화장실 발굴조사 현장 3D스캔이미지 -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이번에 발굴된 화장실은 동궁 권역 중에서도 남쪽 지역에 위치하며 동궁과 관련된 하급 관리와 궁녀, 궁궐을 지키는 군인들이 주로 이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동궁 권역의 건물들은 1868년(고종 5년)에 완공되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조선물산공진회장이 들어서면서 크게 훼손되게 됩니다.
※일제는 경복궁내 조선물산공진회라는 박람회를 빌미로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을 차츰 훼손하게 됩니다.


* 경복궁배치도(景福宮配置圖): 1888~1890년경 경복궁 중건 후 전각의 배치도면으로 고려대학교 소장본이 있음
* 북궐도형(北闕圖形): 1907년 경 왕실 재산 파악을 목적으로 제작된 도면으로 추정되며 규장각과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본이 있음
* 궁궐지(宮闕志): 1904년경의 경복궁 전각 칸수와 용도를 설명한 책
* 경복궁배치도와 북궐도형에서 화장실은 측(厠)혹은 측간(廁間)으로 표기됨
* 조선물산공진회(朝鮮物産共進會): 1915년 9월11일 ~ 1915년 10월 30일까지 일제가 경복궁에서 전국의 물품을 수집·전시한 대대적인 박람회로 조선 병합의 정당성을 합리화하는데 이용
* 궐내각사(闕內各司): 궁궐 내에 있었던 중앙 관청
* 경복궁 운영 당시 국립민속박물관 부지의 용도 : 여러 직능을 가진 궁녀들의 거처와 일터로 일제강점기 때 대부분 철거되어 공터로 남아 있었으며, 1975년 현재의 국립민속박물관 건물이 조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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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된 유구가 화장실이라는 것은 「경복궁배치도」와 『궁궐지(宮闕志)』의 기록으로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발굴 유구의 토양에서 많은 양의 기생충 알(g당 18,000건)과 씨앗(오이‧가지‧들깨)이 검출되었다고 문화재청에서는 밝혔습니다. 또한 『경복궁 영건일기(景福宮 營建日記)』의 기록과 가속 질량분석기(AMS, Accelerator Mass Spectrometer)를 이용한 절대연대분석, 발굴한 토양층의 선후 관계 등으로 볼 때, 이 화장실은 1868년 경복궁이 중건될 때 만들어져서 20여 년간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여진다고 합니다.

경복궁 공중화장실 유구에서 발견된 기생충 알과 씨앗류 -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 경복궁 영건일기(景福宮 營建日記): 고종 대 경복궁의 중건 과정을 1865년 4월부터 1868년 7월까지
기록한 일기형식의 책으로 한성부 주부였던 원세철(元世澈)이 작성함
* AMS: 질량가속기를 이용하여 극소량의 시료에서 정밀한 연대 정보를 산출하는 방법

 

"150여 년 전 경복궁 공중 화장실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현대식 정화시설"


이번에 발굴된 화장실의 구조는 길이 10.4m, 너비 1.4m, 깊이 1.8m의 좁고 긴 네모꼴 석조로 된 구덩이 형태인데요. 바닥부터 벽면까지 모두 돌로 되어 있어 분뇨가 구덩이 밖으로 스며 나가는 것을 막게 되있습니다. 또한 정화시설 내부로 물이 들어오는 입수구(入水口) 1개와 물이 나가는 출수구(出水口) 2개가 있는데, 북쪽에 있는 입수구의 높이가 출수구보다 낮게 위치합니다. 유입된 물은 화장실에 있는 분변과 섞이면서 분변의 발효를 빠르게 하고 부피가 줄여 바닥에 가라앉히는 기능을 하였습니다. 분변에 섞여 있는 오수는 변에서 분리되어 정화수와 함께 출수구를 통해 궁궐 밖으로 배출되는데요. 이렇게 발효된 분뇨는 악취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독소가 빠져서 비료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화장실 유구 입수구와 출수구 -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이 구조는 놀랍게 현대식 정화조 구조(분뇨 침적물에 물 유입→ 분뇨 발효와 침전→ 오수와 정화수 외부 배출)와 유사하다고 하는데요. 정말 조상들의 지혜는 시대를 초월합니다.

화장실 유구의 규모와 복원 실측도 -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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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자료에 따르면 화장실의 규모는 4∼5칸인데, 한 번에 최대 10명이 이용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1인당 1일 분뇨량 대비 정화시설의 전체 용적량(16.22㎥)으로 보면 하루 150여 명이 사용할 수 있었는데, 이는 물의 유입과 배수 시설이 없는 화장실에 비하여 약 5배 정도 많은 것이라고 합니다.

* 1인당 1일 분뇨 발생량: 1960년~80년대 기준 평균 1.2L


관계전문가(이장훈 한국생활악취연구소 소장)에 의하면 150여 년 전에 정화시설을 갖춘 경복궁의 대형 화장실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고 하는데요.

익산 왕궁리 유적과 양주 회암사 정화시설 -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고대 유적에서 정화시설은 우리나라 백제 때의 왕궁 시설인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도 확인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경복궁 유규에서 보다시피 분변이 잘 발효될 수 있도록 물을 흘려보내 오염물을 정화시킨 다음 외부로 배출하는 구조는 이전보다 월등히 발달된 기술입니다. 이 같은 분뇨 정화시설은 우리나라에만 있으며, 유럽과 일본의 경우에는 분뇨를 포함한 모든 생활하수를 함께 처리하는 시설이 19세기 말에 들어서야 정착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이웃나라 중국의 경우에는 집마다 분뇨를 저장하는 대형 나무통이 있었다고만 전해질 뿐 자세한 처리 방식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이번 경복궁 화장실 유구의 발굴은 그동안 관심이 적었던 조선 시대 궁궐의 생활사 복원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습니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이번 발굴조사의 결과를 보여주는 동영상을 문화재청 유튜브와 국립문화재연구소 유튜브를 통해 오는 7월 12일부터 공개하여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연구자와 시민들에게 제공할 예정이니 한번 시청해보시기 바랍니다.


문화재청 유튜브 : http://www.youtube.com/user/chluvu
국립문화재연구소 유튜브 : https://www.youtube.com/channel/UCUwAZiWBC9eVDFEQv--kBFQ

※ 자료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우리 조상들의 삶의 지혜는 내선일체라는 표어를 내세워 민족말살정책을 실행한 치욕스러운 일제강점시대를 겪고 많이 사라지거나 다른 곳에 흡수됐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한국의 과거 흔적을 발견하고 역사 바로 세우는 길에 앞장서고 있는 분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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