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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살인마들 그들이 죽기 직전 남긴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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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엽기적이고 잔혹한 살인마들은 그들과 걸맞게 기상천회한 마지막 말을 남기기도 하는데요. 역시 그들은 일반인과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듯 보입니다.

 

▶게리 마크 길모어(Gary Gilmore) (원래 이름 : 페이 로버트 코프먼)

 

1940년 12월 4일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난 게리 길모어는 14세때 친구들과 함께 작은 자동차 절도 사건을 시작으로 첫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합니다. 그의 성격은 의지하던 아버지가 죽은 후 부터 급격하게 변화하게 되는데요. 성격은 거칠어지고 자주 술에 취하곤  합니다. 그는 그후로도 커가면서 폭행 2회 및 무장강도 3회로 교도소를 들락 거리게 되는데 그를 감정한 교도소 정신과 의사는 그를 '반사회적 성격 장애'로 진단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결국 1976년 4월 조건부 가석방을 받아 출소 하여 단열재 회사에서 일하며 새로운 삶을 꿈꾸기도 하는데, 불행히도 그의 성격은 변함없었고 예전의 난폭한 삶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결국 그는 1976년 7월 유타주의 오렘과 포로보에서 이틀간에 걸쳐 주유소 직원 '맥스 젠슨'과 모텔 직원 '베니 뷔쉬넬'을 총으로 쏘아 총 두명을 살해하게 되는데요.

 

그는 태연하게 '그저 이유없이 죽이고 싶어서 죽였다'고 말합니다.

 

이 발언은 미국 사회를 경악케 하였는데요. 결국 여론에 힘입어 1972년부터 사형집행이 중지되었던 미국의 사형제도가 다시 부활되게 됩니다. (희대의 사이비 종교를 창시한 '찰스 맨슨'은 운좋게도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1972년 캘리포니아 사형제도 폐지로 종신형을 선고받게됩니다)

 

 

게리 마크 길모어 -출처 위키백과

 

 

게리 마크는 1976년 11월10일 사형제도의 부활과 함께 최초로 사형을 선고 받으며 대법원에서 '제발 나를 총살시켜달라' 며 호소하게 됩니다. 

 

결국 그는 그의 뜻대로 1977년 1월 17일 36세의 나이로 총살형에 처하게 되는데요.

 

그는 총살 당하기전 마지막 식사인 햄버거와 달걀, 그리고 감자를 먹고 사형장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사형장에서 그는 다섯명의 사수 앞에서 이렇게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

"Let's do it (자, 시작합시다.)"

그의 뜻에 따라 각막은 두사람에게 이식되었고, 그는 자신의 생각을 담은 'Shot in the heart(내 심장을 향해 쏴라)'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합니다. 또한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당시 나이키 광고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just do it'

 

 

페터 퀴르텐(Peter Kürten)

 

1883년 5월 26일 독일 제국 뭘하임암라인에서 태어난 그는 독일 최악의 연쇄 살인범중 하나로 손꼽히는데요. 그는 13세때 양이나, 돼지, 염소와의 성적인 행동에 빠져들게 되었으며, 방화와 살인미수 등의 많은 전과를 가졌던 상습범으로 그에게는 흐르는 피를 보면 성적쾌감을 느끼는 등의 쾌락살인을 즐기는 성도착 증세가 있었는데, 1929년 2월에서 11월까지 뒤셀도르프에서 여러 건의 살인과 성범죄를 저질르게 됩니다. 결국 그는 독일 법원에서 9건의 살인과 7건의 살인미수에 관해 유죄가 확정되어 1931년 4월 사형을 선고 받게 됩니다.

 

 

페터 퀴르텐 -출처 위키백과

 

 

사형당하기 전에 그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게 되는데요.

 

"말해보게. 내가 머리가 잘려나간 다음에 잠시동안 내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핏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모든 기쁨을 끝내는 마지막 즐거움이 되겠군"

 

1931년 7월 2일 단두대에서 그는 웃는 얼굴로 참수되게 됩니다.

그는 프리츠랑(Fritz Lang) 감독의 1931년 독일 스릴러 영화 'M'에서 나온 살인마의 모델이 되기도 합니다.

 

 

로버트 올튼 해리스(Robert Alton Harris)

 

1953년 1월 15일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 포트 브래그에서 태어난 그는 아홉자녀 중 다섯번째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케네스는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용감한 군인에게 수여되는 실버스타 훈장과 부상당한 병사에게 수여하는 퍼플 하트를 훈장으로 받은 육군 병장 출신으로 그의 아내 에블린과 함께 심각한 알콜 중독을 겪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케네스는 해리스를 임신한 자신의 아내 에블린의 배를 차버려 두달 빨리 해리스를 조산하게 되는데요. 태어난 해리스가 아내의 불륜에서 태어난 아이라고 굳게 믿었던 아버지에 의해 학대의 대상이 되게 됩니다.

 

또한 해리스는 '태아 알코올 증후군 FASD(Fetal alcohol spectrum disorder)'으로 태어나게 되는데요. 비정상적인 외모, 짧은 키, 낮은 체중, 작은 머리크기, 협응력과 행동문제, 학습장애, 청각 또는 시력에 대한 문제 등을 겪게 됩니다.

 

아버지의 전쟁 부상치료 완료로 1964년 캘리포니아 비살리아로 이사하게 되는데요. 그의 아버지는 자신들의 딸을 성적학대를 하기도 하였으며 그는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해리스의 가족은 잦은 이주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런 불안정한 환경은 13살때 해리스로 하여금 차를 훔치게 하여 체포되어 청소년 구금센터인 '청소년 홀 JDC'에서 4개월간 지내게 되지만 구금센터에서 동료수감자들에게 해리스는 반복적인 강간을 당하게 됩니다. 출소하자 그의 어머니 에블린은 당시 14세였던 해리스를 방치하였고 해리스는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 오클라호마의 그의형제 자매와 살게 되는데 또 다시 차를 훔쳐 플로리다의 청소년 구금센터에 3년간 감옥살이 하게 됩니다. 그는 이후 1973년에 결혼을 하고 아들을 한명 두기도 하였는데, 1978년 5월과 6월간 로버트는 그의 동생인 18살 다니엘과 함께 은행강도 계획을 짜기도 합니다. 그들은 이웃집의 총을 두개 훔치고 은행털이의 목표인 샌디에이고로 밤새 운전하였는데요. 그들은 탄약을 구입하고 미라마 저수지 근처의 시골지역에서 강도 연습을 하는데 시간을 보냅니다.

 

7월 5일 샌디에고의 미라메사의 한 슈퍼마켓 주차장에서 녹색 포드LTD차량에 앉아 16 세인 존 메이에스키와(John Mayeski)와 마이클 베이커는(Michael Baker) 치즈버거를 먹으며 존 메이에스키의 운전면허증 취득을 축하하기 위한 기념 낚시로 하루를 보낼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을 지나던 해리스 형제의 눈에 띄게 되는데 차가 하나 더 필요했던 해리스는 그들을 위협하며 미라마 저수지로 가게 하는데 소년들에게 은행을 털기 위해 차량을 사용할거지만 아무도 다치치 않을 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소년들에게 무릎을 꿇게 명령하고 소년들은 겁에 먹어 기도하기 시작하는데요.

 

해리스는 소년들에게 '울지 말고 남자 처럼 죽으라'며 두소년들을 총으로 여러번 쏴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해리스 형제는 이후 두대의 차를 이끌고 미라메사의 집으로 돌아와 희생자들이 반쯤 남긴 치즈버거를 먹으며 해리스는 살인에 대해 자랑하기도 합니다. 한시간후 해리스 형제는 결국 목표였던 샌디에고 신탁 저축 은행 강도에 성공하고 약 2천 달러를 훔쳐 달아나게 됩니다.  강도의 목격자는 그들을 은밀히 뒤따라 나섰고 그들을 신고하여 결국 모두 검거하게 되는데요. 아이러니 하게도 해리스 형제에게 죽은 마이클 베이커의 아버지 스티븐 베이커에게 검거 되게 됩니다. 그는 검거 동안에도 자신의 아들이 이들의 손에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샌디에고 카운티 고등 법원에서는 해리스에게 1급 살인 협의를 적용하여 사형을 선고 하고 1981년 캘리포니아 대법원에 의해 사형이 확정되게 됩니다. 또한 공범이자 그의 형제인 다니엘에게는 납치 혐의 유죄로 6년형만 선고 받게 되는데요. 그는 1983년 석방되게 됩니다. 

 

 

로버트 올튼 해리스  -출처 위키백과

 

 

로버트 해리스는 항소와 집행유예라는 우여곡절 속에 1992년 4월 21일 산 쿠엔틴 주립 교도소의 가스실에서 결국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그는 사형 집행 전 이런 유언을 남깁니다.

 

"누구나 왕이나 청소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모두 저승사자와 춤 추겠지.” 

 

 

테드 번디(Theodore Robert Bundy)

 

테드 번디는 1946년 11월 24일 버몬트 주 벌링턴에 있는 미혼모들을 위한 시설인 엘리자베스 룬드 홈에서 어머니 엘리너 루이즈 코웰에게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누군지 확실하지 않았는데, 가족들의 일부는 어머니 루이즈의 아버지인 사뮤엘 코웰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번디는 3살까지 할아버지인 외조부 사뮤엘 코웰과 엘리너 코웰의 필라델피아 집에서 함께 살게되었는데 샤뮤엘 코웰은 혼외자에 대한 오명을 피하기 위해 번디를 아들처럼 키웠다고 합니다. 이런상황에서 가족들, 친구들, 할아버지가 번디의 아버지이며 번디를 낳은 어머니는 누나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데, 번디는 진실을 알게 되지만 그 사실을 덮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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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적 성도착 증상 발현과 싸이코적 인격이 생기기 시작 하는 등 심리학을 공부하기도 했던 그는 사회적으로 성공하지만 결국 살인을 저지르기 시작하는데요.

테드 번디 -출처 위키백과

 

 

테드 번디의 자백으로 10대 때부터 살인을 했을 지도 모르는 설이 많지만 그의 범죄가 문서화된 1974년부터(27살)~ 1978년까지 5명의 살인미수, 최소 35명 이상의 여자들에게 변태적인 강간과 살인을 저지르게 됩니다. 또한 테드 번디는 귀공자 같은 느낌에 지식인의 탈을 쓴 연쇄 살인마로 전형적인 사이코 패스의 특징을 갖고 있는데요. 사형이 확정되고 1989년 1월 24일 전기 의자에서 생을 마감할때 이런 말을 남기게 됩니다.

 

"제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주세요"

 

그는 훗날 영화 '양들의 침묵'의 모티브가 됩니다.

 

 

에일린 워노스(Aileen Carol Wuornos)

 

워노스는 1956년 2월 28일 미국 미시간주 로체스터에서 태어났습니다. 가족은 조금 특이 합니다. 그녀의 어머니 다이앤은 14살때, 16살 남편 피트먼과 일찍 결혼하게 되었는데 정신분열증이 있던 남편과 결혼 2년도 되지 않아 에일린이 태어나기 2달전 이혼을 하였습니다. 그의 전남편은 후에 아동성범죄로 유죄를 받아 1969년 1월 교수형을 당하게 되는데요. 그녀의 어머니는 1960년 3월 그녀와 오빠 키스를 합법적으로 입양한 알코올 중독자 외조부모에게 에일린을 맡기게 됩니다.

 

항상 술에 취한 외할아버지는 아이들을 자주 폭행하고 구타를 가하였는데, 이런 환경에서 자란 에일린은 11살 때부터 담배, 마약, 군것질거리를 위해 학교 남학생들 심지어 친오빠와 성행위를 하였다고 합니다. 14살이였던 1970년에는 할아버지 친구의 강간으로 임신을 하여 아들을 출산하였는데 아이는 곧바로 입양되었고, 이를 계기로 다니던 학교에서 중퇴하고 외할아버지로 부터 15살이 되자 집에서 쫒겨나게 됩니다. 남매는 위탁가정에 보내졌지만 에일린은 그곳에서 가출하였고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고향 근처 숲에서 매춘을 하는 등 엉망인 청소년기를 보내다가 플로리다로 떠나게 됩니다.

 

성인이 된 에일린은 불법 무기 소지, 강도, 위조 등의 많은 범죄에 연루되어 경찰서를 자주 들락거렸는데, 친오빠 키스는 1976년 식도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오빠의 보상 사망 보험금을 받은 에일린은 많은 돈을 받았지만 낭비벽으로 인해 모두 탕진해버렸는데, 플로리다의 69살의 부유한 요트 클럽 회장을 만나 결혼하여 다시 안정을 되찾지만 역시나 낭비벽과 성격 문제로 인해 질책하는 남편을 지팡이로 폭행하여 경찰에 체포되고 집에서 쫒겨나 이혼까지 당하게 됩니다.

 

이후로도 에일린은 범죄에 연류되어 감옥을 들락거리는데, 1986년 타이리아 무어라는 게이 바 호텔 메이드를 만나 사귀게 되고, 이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연쇄살인과 강도를 저지르게 됩니다. 1989년부터 1990년까지 에일린은 22구경 리볼버 권총으로 중년 이상의 남자 7명을 계획적 연쇄 살인하고 시신과 차량들을 버리게 되는데 경찰은 범행에 사용된 권총과 지문등을 추적하였고 결국 1991년 1월 9일 술집에서 에일린은 체포되게 됩니다.

 

애인 무어는 경찰들의 취조에 가족이 무너질거 같다며 에일린에게 범행자백을 설득하고 1월 10일 자백을 하게 되는데요. 에일린은 재판에서 남자들 모두 자신을 강간하려들었고 물건을 훔치려해서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하였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사형선고를 받게 됩니다. 그녀를 진찰한 정신과 의사들은 그녀에게 '사이코패스' 진단과 함께 '경계선 성격장애'와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있음을 파악하였는데, 에일린은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을때 판사와 검사에게 욕을 하며 "지옥에서 또 보죠. 강간 당한 여자에게 사형판결을 내렸으니! 당신의 부인과 아이들이 강간당하길 바랍니다!"며 중얼거리며 욕설하며 퇴장하기도 합니다. 

 

 

에일린 워노스 -출처 위키백과

 

 

2002년 10월 9일 미국 플로리다주 그녀는 약물 주사를 이용한 사형 집행전 인상적인 말을 남기게 됩니다.

 

"나는 바위를 짊어지고 바다를 건너, 신과 함께 부활할 것이다. 마치 독립 기념일인 6월 6일 처럼, 영화처럼, 큰배를 타고.."

 

한편 2003년 에일린을 주인공으로 한 패티 젠킨스 감독의 영화 '몬스터(Monster)'를 개봉하였는데 샤를리즈테론이 에일린 역으로 열연하여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합니다.

 

 

▶제프리 라이오넬 다머(Jeffrey Lionel Dahmer)

 

1960년 5월 21일 미국 위스콘신주 웨스트앨리스시에서 태어난 제프리는 '밀워키의 식인귀'라는 별명을 갖고 있으며, 1978년 부터 1991년에 걸쳐 밀워키주 또는 위스콘신주에서 10대를 포함한 남자 17명을 살해하고 사체를 절단하고 인육을 먹기도 했으며 유골과 생식기를 전리품처럼 간직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릴땐 동물 뼈와 사체에 관심이 많았는데, 한번은 화학자인 아버지로 부터 뼈 표백과 보존에 대한 방법을 터득하여 뼈수집에 더 깊이 빠지게 되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14살부터 학교에서 몰래 술을 마시기도 했으며 성욕이 시작되어 그가 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제프리 라이오넬 다머 -출처 위키백과

 

 

1991년 7월 22일 다머는 트레이시 에드워즈를 유혹해 이상한 약을 먹이게 되는데 정신을 차린 에드워즈는 겨우 탈출하여 경찰에 신고하였고 그의 집을 수색했는데 인육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로인해 그의 변태적인 살인 행각은 드러나게 되었는데, 1992년 2월 15일 미국 위스콘신 주 법원은 1853년 사형제 폐지로 인해, 제프리 다머에게 징역 937년을 선고하게 됩니다. 

 

수감 중이던 1994년 11월 28일 다머는 화장실 청소를 하던 중 크리스토퍼 스칼버라는 다른 수감자와 인종 차별 문제로 시비가 붙어 싸움을 하게 되는데, 스칼버는 체육관에서 몰래 가지고 나온 쇠막대기로 다머를 때려 다머는 병원에 이송됬으나 결국 사망하게 됩니다.

그는 죽기 직전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죽든 말든 상관 없어. 어서 날 죽여봐!" 

 

 

기타 유명 살인마들의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

 

칼 팬즈램

1891년 미네소타에서 태어난 칼 팬즈램은 12살때 미네소타 직업 훈련소에서 받았던 잔인한 체벌로 인해 살인을 저질렀다고 이야기 하곤 했는데요. 서아프리카, 남아프리카, 미국, 유럽을 돌아다니며 남성들을 대상으로 21명의 연쇄살인을 저지르게 됩니다. 

 

1928년 미국에서 체포되고 사형이 확정되어 1930년 9월 5일 그는 교수대에 서게 되는데 그는 뉘우치는 기색도 없이 사형 8분전 교도관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서둘러 이 머저리야, 네가 꾸물대는 동안에 난 10명의 목을 매달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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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트 피쉬

최소 3명 이상의 어린 아이들을 살해 후 그 인육을 먹었던 늙은 그는

1936년 1월 16일 전기의자에 앉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조차 모르겠다"

 

 

존 웨인 게이시

33명의 남성들을 강간 후 살해한 그는

1994년 5월 10일 약물주사형으로 죽기전에 이런말을 남깁니다.

"좆까" 

 

 

월리엄 보닌

14명에서 44명 추정되는 수많은 소년들을 강간 후 살해한 그는

1996년 2월 23일 약물주사형으로 죽기전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법에 저촉되는 심각한 일을 저지를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전에 먼저 조용한 곳으로 가서 그일을 저지를 건지 진지하게 고민해보라고 말하고 싶네요."

 

 

케네스 맥더프

9명 이상의 사람들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람은

1998년 11월 17일 약물주사형 사형집행 마지막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풀려날 준비가 됐습니다. 날 풀어주시죠"

 

 

아멜리아 다이어

약 200명에서 400명 혹은 그 이상의 어린아이들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여자는

1896년 6월 10일 교수형 전 마지막 말을 하게 됩니다.

"할 말 없습니다"

 

 

피터 매뉴일

최소 7명 이상의 여성을 강간 후 살해한 피터 매뉴일은

1958년 7월 11일 교수형에 처해지기 전 마지막 말을 전합니다. 

"크게 라디오를 켜고 조용히 가겠습니다."

 

 

제임스 프렌치

두명의 사람을 살해하고 사형선고를 받은 제임스 프렌치는

1966년 8월 19일 전기의자형으로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합니다. 

"기사 제목으로 이거 어때? 프렌치 프라이!"

 

 

▶역시 세계의 살인마들 답게 죽기 직전의 마지막 말들은 섬뜩한데요. 대부분의 살인마들은 아무이유없이 생기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괴물이 되는 이유는 환경적, 유전적인, 후천적인 요인이 많이 작용하는 것 같은데요.

 

우리 주위 어디에서나 이런 사람들은 존재할수 있으며 그들을 관리하고 인격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어린시절부터 부모들 또는 정부에서 세심하게 아이들을 관리하고 돌봐줄 필요가 있습니다.   

 

 

홀로코스트 아이들의 어머니 '이레나 센들러'

우키시마호(UKISHIMA MARU)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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